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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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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신, 호구별성(戶口別星),
추방된 다에바, 두술사(疱術師), “약한 자들”1


(이 문건은 한반도 뱀의 손에서 작성되었음)

개요

귀신(鬼神) 신사(辛巳) 제(第) 이호(二號)

상(詳) 마마(媽媽)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
당(當) 이금위(異禁衛) 감찰관(監察官) 비사대부(批士大夫) 노바(怒貌)
결(結) 귀신사와 교전 중 [某]
현(現) 비록(秘錄)에 기록 후 종결(終結)


선비가 말한다.

이들은 마마를 자유자재로 능히 다루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推定)되는 이물들로, 본디 도가의 선인(仙人)으로 알려진 바 있다. 허나 옛 신라서부터 고려의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이들이 도사가 아닌, 나아가 조선인, 또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전부 두세 명으로, 둘은 사내이며, 하나는 여인이다. 인간에게 마마를 앓게 할 수 있는 것은 셋 모두 한가지다. 그 나타난 바는 불명(不明)이며, 이들이 옛 신라 때 이 땅에 당도(當到)했던 것만 알 수 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손님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붙임] 한성 땅에서 이들 중 하나라고 추정되는 사내를 사로잡으려는 목적으로 귀신사가 출두하여 [某]

[붙임] 소위 손님네라는 작자들을 사로잡는 일은 중단되었다. 이는 하등 이익이 될 바가 없고, 나아가 그 특질(特質)마저도 불명확한 사안이어늘, 그야말로 노승발검(怒蠅魃劍)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안에 힘을 쓰는 것이 옳으리라. 비사대부 노바

도해

이미지

설명

지식

특징: 손님네는 한국 설화에 수록된 질병 조정자들이다. 천연두의 한국 북부 방언이 '큰 손님'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들은 예 • 맥 • 한 계통 국가의 판도 전역에서 천연두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에서는 그들이 통일 신라(Later Silla)인들과 고려(Goryeo)인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외모나 복식을 가졌다고 묘사된다. 『반야록』(般野錄)에서는 그들이 "이방인임을 여실히 드러내었다"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있다. "그들이 지나가면 아낙들은 수다를 멈추었고, 사내들은 나무 하기를 멈추었다"하고, "서둘러 제 아이를 숨기기에 바빴다"라는 손님네를 언급하는 또 다른 대목은 그들과 현지인들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인 의복 문화적 차이를 암시한다. ‘손님굿’에서는 압록강의 사공이 손님네의 일원인 각시손님에게 반해 희롱하였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므로, 당대인들의 기준으로 혐오스러운 외모는 아니었던 듯.

성질: 구성원은 총 네 명으로, 각각 한국 설화에서의 명칭은 ‘각시손님’, ‘호반손님', ‘문반손님’, ‘작은 손님’이다. 그들은 사르킥 혈술과 기적학적 행위로 천연두 바이러스2를 생성해내고 이를 조종할 수 있었다.3 이들이 한국 민간 설화에서 역신, 마마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들 특유의 사악한 성정으로, 그 심성이 변덕스러워 민간에 크고 많은 양의 피해를 줬다고 전해진다. 특히나 그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반드시 피해를 보았고, 그러하지 않은 이들조차 천연두를 앓게 하는 등 손님네는 무분별한 공격을 자행하였다.

 특히 구성원 중 ‘작은 손님’이라는 자는 그 무자비한 공격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본디 그는 약 879년경에 태어난 통일 신라인으로, 상술한 두술(痘術)로 천연두를 앓게 됨과 동시에 사르킥적으로 신체적으로 변이4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목격담에서 그는 다른 손님네를 모시는 종 내지 제자로 묘사되었다.

 흔히 사르킥 고위 계급이 그러하듯, 손님네의 수명은 상당히 긴 것으로 보인다. 신라 땅에 도착했을 때의 이들의 나이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행적이 남아 있는 점, 또 명확하지는 않으나 그 이후에도 이들이라고 추정되는 삽화가 출현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두술사들은 장생족의 평균 수명과 비슷한 정보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추가적으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들의 수명은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인원이 있는 만큼 장생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들의 두술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다. 우리가 서천 CC에서 조우한 ‘작은 손님’을 대상으로 검사해 본 결과, 현재 그에게는 단순한 감기를 걸리게 할 정도의 기적학적 능력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5 이것이 원조 손님네들 때문에 변이한 작은 손님의 특성 탓인지, 아니면 두술사 특유의 두술력 감퇴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6

내력 및 관계: ‘작은 손님’ 김철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두술사의 이름은 각각 야카르엔Jakarren, 포우루샤스파Pourushaspa, 아슐링Aisling인 것으로 밝혀졌다.7

야카르엔은 다에바 가모장의 딸이자 그 역시 젊은 가모장으로써, 사비르Sabir라는 도시를 다스리고 있었다.8 포우루샤스파는 고위층 가모장의 아들로, 성년이 되었을 때부터 숱한 여신관들과 가모장들의 조언자로서 일하며 굉장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고 전해진다.9 아슐링은 중국의 장군 진개와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다 여겨지는 전설적인 가모장 트라이타오나Thraetaona의 미망인으로, 그 자신의 학식과 지위로 다에바 상류사회의 당당한 한 축으로 대접받고 있었다고 전해진다.1011 야카르엔과 포우루샤스파는 후기 다에바 태생으로, 당시 다에바인 귀족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해 있었다.

이 셋이 추방된 이유는 당시 다에바를 파멸로 몰고 간 주 원인이자 이교였던 낼캐교를 비밀리에 받아들여서라고 추정된다.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다에바 역사서의 작은 파편들에서 이들에 관한 기록을 긁어낼 수 있었다. 하단에 첨부할 문서는 다에바에 거주하던 이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다.

그리하여 이들의 수괴 야카르엔이 쓰러지더이다. 도시 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농성하던 그녀는 다름 아닌 제 어미의 군사에게 붙들려 나와 광장에 엎어졌고, 곧 그들에게 짓밟히었소. 한때 가모장이었다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치욕이었지. 도시의 모든 백성들이 돌을 던졌고 천더기들마저 야유했소.

야카르엔을 뒤이어 쉰 세명의 배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소. 한가지로 붉은 옷과 검은 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자들이 차례로 군사들의 억척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가모장 옆에 꿇어 앉았지. 불경스러운 불길이 그들의 눈빛에 이글거리고 있었소. 그 중에서도 가장 난폭했던 이는 포우루샤스파였을거요. 그 젊은 조언자이자 야카르엔의 남첩12은 실질적인 전투는 구경도 못해본 주제에 마치 자기가 일당백의 장수라도 되는 듯이 굴더군. 그러나 결국 붙잡히고, 수 대는 더 얻어맞은 뒤에야 진정했소. 바로 옆의 아슐링이 잠잠하게 끌려 나온 것과는 차이가 있는 반응이었소.

야카르엔도 비록 힘을 소진하긴 하였으나 만만치 않은 존재였지. 열 명이 넘는 군사가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소. 그들 중 누구도 긴장을 풀지 못했고.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놓는 순간 이교도의 입이 자신들을 물어뜯으리란 걸 알 수 있었을테니까. 그만큼 그녀의 얼굴은 험악했고, 온 몸을 옭아맨 오라를 풀기 위해 거세게 몸부림치고 있었소.

그 모든 저항이 위대한 가모장 퀀타리엔Quantarien이 현현하면서 수그러들더이다.

야카르엔의 얼굴은 제 어미를 보자마자 허옇게 창백해졌소. 그 자가 그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로 얼룩지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지. 다른 이들도 이를 알았는지, 더욱 조롱하는 소리가 커져만 갔소. 그러나 이 소리도 퀀타리엔이 손을 들어올리자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소.

퀀타리엔은 말했소. “내 딸아. 네가 수치스러운 짓을 했구나.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처하고 그 오랜 시간 터득했던 다에바의 지혜를 도랑에 내던져 썩어가게 만들었어.”

좌중에 있는 자들은 모두 겁에 질리거나 긴장한 상태였소. 따라서 그곳에는 오직 가모장의 말만 소용돌이치고 있었지. 광장을 울리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배반자의 우두머리가 자기 어머니에게 대답했소.

“어머니 다에바이시여, 나를 이끄시는 분, 수많은 전투에서 이기시는 분이여. 나를 이제 만나러 오셨나이까. 이 사단이 나고서야, 나를 보러 오실 마음이 생겼나이까.”

“네가 옳게만 나아가고 있었더라도 널 만나지 않았을게다. [해독 불가능]다에바답게 행위하였더라면 내가 너를 만날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넌 다에바의 수치다.”

야카르엔의 얼굴은 입을 뗄 때마다 새파래져 갔지만, 그 간 큰 냉담자는 꿋꿋이 받아쳤소.

"나는 내가 다에바답게 행위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나이다. 당신과 닮은 내가 되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고하나이다. 다에바의 악독한[해석 불가능] 오직 현자께서 이 일을 아시리다.

다에바란 지상에 존재하는 악의 표상이오. 사람의 형(形)을 갖추었으되 사람이지 못한 바, 진정으로 이 삶에 기쁨을 느낄 이유 무엇이겠소. [해독 불가능]

지나갈 옛 존재들을 탐하지 마시오. 불필요한 살육과 인신 공양을 멈추시오. '교만은 지독한 추락을 불러오느니, 공허 속을 들여다 볼 때는, 공허가 그대가 되지 않도록 하라.'"

온갖 곳에서 분노의 함성이 터져나오더군. 여러 신들도 그 위로 모여 그 모든 사단을 내려다 보고 있었소. 그 허연 거죽, 존재적 공백을 울리는 거대한 비명의 집합이 공개재판정의 공허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그 이름 없는 자들은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끼익거리는 웃음을 짓더이다. 얼굴 없는 신은 삼각형 낙인으로 그 광경을 직시하기를 거부하고 돌아서 떠났고, 털 달린 경이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들의 행태를 관조했소. [해독 불가능] 팡Fang, 그대도 와서 보았다면 좋으련만.

위대한 가모장은 대답하지 않았소. 판결을 의미하는 몸짓을 취해보였을뿐. 퀀타리엔은 비틀린 왼손의 중지로 이마에서부터 메마른 윗입술 께까지를 문질렀소. 관중 사이에서는 헉 하는 숨소리만이 일었지. 소멸형에 처한단 표식이었소. 배반자들 사이에서도 공포에 질린 기색이 역력한 자가 많더이다.

그리고 가모장이 말했소. “배교자들은 들으라. 다에바의 선례에 따라 너희들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너희들의 어리석은 행위에 통탄하나, 본래 그 신분이 일천하지 않음에 따라 회생 여지가 있다고 보아 한 기회를 너희에게 주니, 이를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너희의 그 조잡한 사상과 불온한 행동은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조롱할 것일진저, 무얼 그리 집착하여 죽기를 바라느냐.

그 간악한 심성을 버리고 정당한 다에바의 질서에 귀속되어라. 그리하면 생(生)을 다시 얻고 천더기의 신세를 피할 수 있으리라.”

광장은 죽음과도 같은 침묵으로 일렁였소. 누구 하나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지. 관중들은 미약한 흥분이 어린 표정으로 누가 먼저 자신의 사상을 배교할 것인지를 두고 작은 목소리로 내기하더이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둘씩 배반자들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가모장의 발 아래에 엎드리는 자들이 생겨났소. 처음에는 조금씩이었지만, 나중에는 한 가족 전체가 가서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소. 그렇게 모두 떠나고, 마침내 세 명만이 남게 되더이다.

배교한 가모장 야카르엔, 배반한 조언자 포우루샤스파, 동조한 미망인 아슐링.

가모장은 표정 없는 얼굴로 물었소. “정녕 너희가 죽음을 작정하려 하느냐?”

야카르엔은 핏발 선 눈으로 애써 고개를 치켜뜨며 대답했소. "내가 무얼 원하는지 당신께서 아시나이다."

아슐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포우루샤스파는 조소를 날리며 모욕적인 행위를 해보였소. 다시금 관중들의 야유가 시작되었지.

퀀타리엔은 다시 손을 들어 좌중을 진정시키고는 제 딸을 바라보았소.

그리고는 그녀의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더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마지막으로 남은 세 다에바인 귀족은 곧장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후, 추방당했다.13 왜 그들이 가까운 지역이 아닌 신라로 향했는지는 불명이다.

우태근(優苔根)의 『체사문(諦史文)』과 김거식(金去湜)의 『기물사편(奇物史編)』 「신라사」에서는 공통적으로 이들이 한반도에 도착한 시기를 약 889년경으로 서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기물사편』에 의하면, 이들은 신라 금관경 강주 땅에 배를 통해 상륙했고, 곧장 수도 금성으로 향하여 당시 군주였던 효공왕을 만났다. 효공왕은 그들을 고대 페르시아에서 온 귀빈으로 대접했다. 이는 천연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행한 일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두술사들은 그가 생각한 것처럼 얌전히 귀화인 귀빈 대접에 만족하지 않았고, 이후 그들은 신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천연두를 부리기 시작한다.

두술사들이 그들의 동행을 만난 시기는 대략 895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동행의 신원은 경순왕의 조부인 의흥왕의 형, 김실흥(金實興)의 아들 김철현(金澈賢)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민담에서는 그들이 만난 이유를 노구 할머니라는 신원 불명의 인간14의 부탁으로 천연두의 면역체계를 형성시키려 접촉했다 전한다. 그러나 김실흥의 반발 및 모욕 등으로 마음이 바뀐 그들은 김철현에게 치사량의 두술을 행하고, 이 과정에서 그의 몸에는 상술한 변이가 일어난다. 이후 김철현은 ‘작은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두술사들과 동행하게 된다.

손님네가 처용과 조우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 직후이리라. 처용은 『삼국유사』제2권 「기이」 처용랑 망해사에 등장하는 인물로, 동해 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이며 아내와 동침한 역신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방식으로 쫓아냈다는 일화가 있다.1516

『기물사편』의 기록에서는 두술사들의 행보가 “한 기이한 도사”를 만난 직후 수그러들었다고 지칭한다. 이때 이 도사를 지칭할 때 ‘급간’, ‘용의 아들’, ‘제웅’, ‘먼 곳에서 온 자’ 등의 별칭을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는 바로 처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문집(流文輯)』에서 처용랑의 부인을 탐한 기이한 여인에 대한 기록도 특기할 만하다.17

가장 사료적으로 잘 기능하는 글은 작자 불명의 『객지사』(客之史)라는 서적이다. 이 서적의 확인 가능한 부분을 보면, 호구별성(戶口別星)과 ‘부인’이라고만 표현된 묘령의 여인과의 성관계 묘사, 그리고 그 후 집에 돌아온 ‘부인’의 남편에 대한 묘사를 보면 어떠한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끔 한다.18

 결국, 조합해보면 이들이 한때 처용을 만난 것, 그리고 폭력적 접촉 이후 두술사들의 천연두 전파 행위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린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접근법: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는 손님네를 어떻게 퇴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수록되었다. 그러나 현재 손님네의 마지막 일원들이 이전만큼 두술을 잘 다루지 못하는 바, 이하의 항목은 그 유용성을 잃었다. 항목은 단순히 학술적인 부분에서만 참고하기를 바란다.19

처용랑 망해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誓今已後
見畵公之形容
不入其門矣
因此
國人門巾占處容之形
以僻邪進慶

"맹세코 이제부터는 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인발술을 연상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이에 본 학인은 처용랑의 역귀 퇴치법이 아직 소실되지 않았으리라는 싵날같은 희망을 걸고 수개월 간 도서관을 뒤진 끝에, 『세을가기』(世乙加記)라는 고서적을 한 부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다. 저자가 처용, 혹은 그 후손이라고 추정되는 이 사료에는 다른 글보다 상세하게 그 퇴치법을 서술해놓고 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종이, 피20, 붓을 준비한다.
둘째 — 종이에다 피로 처용의 얼굴을 그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본판과 얼마나 닮았는지가 아니라 본래 처용랑의 얼굴에 서려있던 상서로움을 얼마나 그려내느냐다..21
셋째 — 문에다 붙인 후, 남은 피로 그 위를 칠한다.

이외에도 ‘손님굿’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사방진을 그리며 달래를 태우는 것, 표적이 된 인물을 현실성 농도가 짙은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 검은 옷을 입히고 짚에다 불을 피워 아래위로 쓸어내리는 등의 행위를 시도할 수 있다.22

기타 상세: 본 논고의 초안에는 의문점 란에 ‘처용은 메카네교도인가’라는 내용이 기재된 바 있었다. 추후 다양한 자료의 조사로 인해 그 의문이 해결되었으므로, 해당 내용을 기타 상세란에 싣기로 한다.

작은 손님이 제공한 두 서적과 『세을가기』에 대한 심도 높은 연구 끝에 처용랑과 그의 행적에 대한 몇 가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본래 나는 처용을 독실자로, 하의 유민로 생각한 바 있었다. 이 전제 하에 나는 초상한국사에서의 메카네교와 그 유구한 역사를 탐구해볼 작정이었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그간 초상종교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반도에서 갑자기 메카네교의 존재가 확인되다니.

물론 일이 잘 돌아갔다면 그랬으리란 말이다.

『세을가기』의 미해독 부분이 해독되며 전문이 모두 밝혀졌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상 술법서라기보단 한 인간의 일대기였다. 처용랑의 일대기.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의 일대기.

처용은 본디 귀산성(貴山城)23 출신으로, 그는 이곳에 자리 잡았던 무역상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879년 그는 교역을 위해 신라에 당도하여, 당시 군주 헌강왕의 신임을 얻었고, 귀화하여 급간의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사르킥교도였다.

…나도 믿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세을가기』의 기록, 학술회 이후 찾아낸 몇 권의 서적에서 지칭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르킥교도임이 틀림없다. 하물며 그를 교조로 모시는 한국 전래 사르킥교24도 있는 마당에 무엇을 부정하리.

『세을가기』와 『나을록』(癩乙錄), 『송을유가』(頌乙流歌)등의 기록에서는 세을진인(世乙眞人)25 처용이 귀산성에 거주할 때부터서 사르킥교 신자라고 서술했고, 번육익이(繁肉益利)의 정신으로 신라에 당도하여 인민을 교화하였다고 서술한다. 다시 말해 한반도 버전의 사르킥 숭배를 처용랑이 일으켰다는 말이리라.

하…

이는 비단 세을가 계통의 서적뿐에만 나오는 기록이 아니라 『반야집』에도 나오는 말이며, 본격적인 사료 조사에 들어가면 이를 은유하는 대목이 다수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술법학논총』 통권 20호에서 한국 불교와 사르킥교가 공유하는 모종의 연관성에 대해 기술한 바, 어쩌면 우리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사르킥교는 이미 한국인의 역사 속에 은밀히 녹아들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잘 모르겠다. 처용랑이 사르킥교도라고? 왜? 역귀들을 물리친 그 자가 어째서 사르킥교도란 말인가. 아니.. 애초에 그럴 수가 있는걸까? 난 지금까지 뭘…

— Wèn

관찰 및 이야기

먼저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단 사실을 서두에 밝혀 두겠습니다. 내 직업도 글로 먹고 사는 일이거니와, 이러한 작문의 일은 제게 노동이라기보다는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어디 실릴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만은 필경 절 조사한 기록에 첨부하시겠지요. 그리하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세간에서 ‘손님네’라 부르는 이들은 저와 제 주인 되시는 분들이십니다. 고국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되신 그분들은 미천한 저를 거두어 동행하게끔 하셨고, 자식처럼 고이 여겨주시었죠. 때문에 저는 그분들의 진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자일 겁니다.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기억 가운데 주인의 언행을 톺아보자니 어느덧 애상감만이 가슴께에 젖어옵니다.

가모장께서는 늘 제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국에서의 정치적 탄압에서 깨달은 바가 크셨던 까닭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유로이 살아갈 방향을 선택해야할 것이라고, 누구든 외부의 간섭 없이 자기가 정한 그 올곧은 방향을 걸어야 진정한 삶이 아니겠느냐고 역설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아직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오랜 방랑길은 그 생각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새 국가를 건설해보자, 우리가 탄압 받았던 것처럼 다른 이들이 탄압 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보자던 그분의 생각은 다시금 그 구성원의 선택으로 흘러갔습니다. 탄압이 없는 사회, 좋다. 그러나 그 사회를 이루는 자들이 그 사회에 동조해야하는 것 아닌가. 탄압하지 않고, 모든 사상이 배척받지 않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심지가 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그분은 다에바의 쇠락이 다에바인 자체의 유약함 때문이라고 여기셨습니다. 심지가 유약한 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만 눌러앉아 있기에 다에바의 멸망은 그분에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이러한 생각들이 결국 두술(痘術)의 운용으로써 그 사회의 구성원을 골라내야한다란 결론으로 치달았습니다.

지난 날의 수많은 역병 창궐은 그런 이유에서 발발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이 땅 위를 배회하며 마마를 퍼트렸고,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이 일어났으나 이를 피한 이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산 자들, 마마를 겪고도 살아난 이들은 우리가 의도한 신세상(新世上)의 구성원으로 알맞은 자로써, 타자(他者)를 배척하지 않고도 제 형(形)을 유지할 수 있는 온당한 존재였지요. 야카르엔께서는 그러한 존재 중 일부에게 직접 접촉하시어 두술을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손님네 자체가 분열하며, 이 나라가 다른 국가의 식민지가 되는 그 일련의 시간 속에서 이 국가의 무가 중 한 맥을 흐르고 있던 두술은 실전되었고 천연두 자체는 이미 인간에게 정복당하였지요. 세 주인 중 두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마지막 남은 가모장께서는 의식조차 회복되기 어려울 겁니다.

우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한 때 가모장께서 제게 처용랑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자였다 하시더군요. 가모장과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강인한 자라 하시었지요. 그 자의 생각이 주인들과 다르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둘은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처용랑은 유약한 자를 치료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유약한 자들을, 심성이 비루하고 남을 존중할 정도로 강하지 못한 자들마저 감싸 안아야 진정으로 여래(如來)가 갈 길이 아니냐고 했다더군요. 제 주인과 처용랑은 거기서 근본적인 길의 방향이 갈렸던 것입니다. 제 주인은 유약한 자들을 솎아내야 한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를 보십시오. 누가 우리가 이겼다고 하겠습니까? 솎아내기는 커녕 우리가 세상의 외곽으로 몰려 이제는 그저 흐릿하게 부유하기만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누가 우리의 사상이 옳도다 여기겠습니까.

밤 사이 내린 비의 흔적이 마치 오지도 않았다는 듯이 말끔히 지워져 있습니다. 그토록 세차게 내린 것이 한가지 얼룩도 남아 있지 않다니 마땅한 일일까요. 흐릿해져 버린 기억 저편을 헤집으니 마음만 심란해집니다.

— 서천에서, 김철현.

손님네 중 본(本) 두술사인 세 손님 각시손님, 문반손님, 호반손님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 시기부터는 알 수 있는 바가 없으며, 유일한 증인인 작은 손님 역시 이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본인인 김철현의 기록은 어느 정도 남아 있으므로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은 해볼 수 있겠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로 추정되는 한국계 남성이 1891년 링글링 브로스 앤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에 출연한 마술사 짐피 첸(Zympy Chen)으로 활동한 이야기이다. 그는 1891년부터 1898년 동안 미국에서 마술과 여러 묘기를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898년 후반, 그는 P. T. 바넘과의 계약을 끊고, 종적을 감춘다. 이후는 불온한 서커스에 들어간 것이라고 추론된다.

이후 김철현은 모종의 이유로 1903년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1905년 3월경 수집원 연의관 우츠노미야 후미코(宇都宮 文子)에 의해 수집원에 포섭된 것으로 보인다.

아오, 웬하고 희지가 동시에 독촉할 줄은 몰랐다. 저 뱀대가리 저거 이번 일만 끝나면 바로 중국으로 쫓아버려야지.

일전에 말했듯 나는 김철현을 알고 있다. 이 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아마 '현실 감각을 상실한 배신자'가 옳으리라. 아니면 '싸구려 이상주의 퀴즐링(quisling)'이라던지.

나는 조선 시기를 살아가며 역신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구한 말,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기의 작은 손님에 대한 사항은 알고 있다. 그 추악한 행위들을 동시대에 겪었으므로.

내가 그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실질적으로 1919년 이후부터였다.2627 그때, 능사사 발족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일단 염두에 두는 버릇을 들여놨었다. 그게 도움이 된 건지 어느 날은 정보 가운데 '이자메아에 부역(附逆)하고 있는 요주의 인물'에 대한 기록이 들어왔다. 이름은 카타누이 한노方縫 般野, 출신지는 불명이나 조선인일 가능성 다수 존재.

친일하는 초상 인사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당시는 넘겼다. 어느 날 족치리라하고. 그 해 9월 즈음인가, 그 자가 이자메아에서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했어도 나는 무시로 일관했다. 한번 부역한 자,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더군다나 그 자가 제 발로 수집원으로 기어들어가 이자메아까지 이르렀다는 그러한 내막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진심으로 이 작자가 어떤 행보를 취하던 간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는다해도 지워지지 않는 죄는 있으며, 그 죗값마저 치르지 않은 자가 같은 죄인을 단죄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철현이 벌인 갖가지 소위 "항일 운동"을 돕지 않았다. 제일 먼저 친일한 자, 제일 먼저 배반한 자가 다시 배반하여 제 옛 주인을 공격한다는 것은… 또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사춘기 시기를 막 지나는 사내아이가 부러 배포를 부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율도로 끌려간 이후부터는 나도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한다. 아마 그가 죽었으려니, 하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제 다시 발견한 그의 모습은, 솔직히 말하면 더욱 실망이 크다. 서천에서 놀고 먹으며 게으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니. 그 수많은 시간을 누구는 온갖 곳을 방황하며 지냈는데, 이제 자기는 휴양지에 눌러앉아 빈둥거리고 있는 걸 보면 솔직히 분통이 안 터진다고는 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가고 상황은 변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며 세상은 그리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 있다. 지워지지 않는 것도 분명 있고. 이 모든 걸 잊은 것처럼 살아가는 작자를 용서해야하는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이므로 그 모든 치욕을 지워야하는가.

- Hx.

의문점

처용이 사르킥교도였다면, 대체 왜 같은 사르킥교도였던 손님네를 방어한 것일까?

그거야 당연히 NTR 당했으니까 — Hx.

//난 진지해. 처용랑이 메카네교도가 아니란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