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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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대학교 사학과에는 주목받는 젊은 교수가 있다. 민속학이라는 정체된 분야에서 서른 일곱이라는 비교적 빠른 나이에 정교수를 달고, 한국 신화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그 교수는 원래라면 3월 새학기를 맞아 강의 준비에 한창이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이날, 나 김세경 교수는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2월 27일의 일이었다.

내가 정교수 재직 3년차에 휴직계를 낸 건 당연히 여행이나 휴가 같은 것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내 동료들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숨겨진 수수께끼를 발견한 교수가 그것을 파헤치러 모험을 떠나는 건 영화에서만으로 충분하다"는데,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실제로 그런 종류의 목적을 가지고서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물론 허황되고 낭만적인 탐험을 기대한 건 아니다. 나름 학술적인 흥미와 탐구열을 자극하는 단서들이 나를 꼬신 것이다.

이 짧지는 않은 추적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설만희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지금 바로 그 사람을 찾으러 가는 거니까.


1.

"설만희 선생? 당연히 알지. 한국 신화 공부하는 사람 중에 선생 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겠다."
"아뇨, 학장님. 선생님 저작을 아시냐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어디 사시는 누구신지 좀 아시냐구요."
"누구시냐고? 으음… 글쎄다. 학위에도 연연치 않고, 학회에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 분 아니냐.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다 그렇지만 유독 개인적인 연락이라곤 통 닿지를 않으니…"

학장님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이마춤의 땀을 슬쩍 훔치셨다. 그야 맞는 말이었다. 나도 연이 닿는 연구자들은 죄다 헤짚어가면서 선생의 행적을 수소문했지만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은거 학자시라지만 설마 학장님도 면식이 없으실 줄이야.

"그래서, 김 교수. 그렇게 애타게 찾는 설 선생님을 만나뵈면 뭘 하려고 그렇게 열심이야?"
"그야 당연한 거죠! 전국의 대학 도서관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시면서 그 정도의 연구 성과라구요. 분명히 뭔가 새로운 정보원이 있는 거라니까요? 문헌이든 취재원이든, 아니 어쩌면 선생님 본인께서 구전본 전승자이실 수도 있죠. 아직 보고되지 않은 거 말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지."
"전 이 분 놓칠 수 없어요. 우리 상황 다 아시잖아요. 선배님들 그렇게 발품을 파시고도 본풀이 몇 개, 구전집 몇 개 말고 우리한테 뭐가 더 있냐고요. 오죽하면 뭐라도 하나 건져보자고 환단고기니 부도지니 하는 위서들까지 털어가며 오염된 옛 신화소를 찾아 헤메는 판 아닙니까. 설 선생님이 명예욕 없는 분이신 건 이해하지만, 이대로 그 분의 지식을 간헐적인 아마추어 논문에만 맡겨두는 건 배임이에요. 한국 민속학에 있어서 범죄나 다름없다고요."

나는 열변을 토해낸 나머지 기운이 빠진 채 학장실의 손님용 소파에 푹 주저앉아버렸다. 학장님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고 계셨다.

"자네 맘 왜 모르겠나."

학장님이 안경을 다시 쓰시면서 입을 떼셨다.

"하지만 학계를 통틀어도 설만희 선생을 만나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어떡하겠느냐고. 그야 우리도 많이 노력해 봤지. 개인적으로 선생의 학식을 흠모해서든, 자네처럼 선생이 가진 새로운 소스를 원해서든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만나보려고 애를 썼단 말이야. 하지만 선생이 논문이나 기고문을 보낼 때 제주도 쪽에서 우편으로 보낸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네."
"제주도요?"
"김 교수 자네, 혹시라도 연차 쓰고 제주도 가서 선생 찾겠다는 말이들랑 하지도 말어. 몇 명이나 헛걸음한 일이야. 제주도라고 해도 발송지 주소도 없는데 그 넓은 곳에서 무슨 수로 찾겠나? 응? 그리고 이렇게까지 노출을 꺼리는 분인데, 만에 하나 제대로 찾아가더라도 '설만희 선생님 맞으십니까,' 하면 '예 그렇습니다' 하시겠냐고. 무슨 말인지 알잖아?"
"그래도…"

나는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이번 학술지에 게재된 새 논문 보고 자극받은 거 나도 알아, 김 교수. 그래도 다음 달이면 개강인데 마음 잡아야지."
"네… 그래야죠."
"곧 수강신청도 열릴 테니까, 새학기 강의 준비에 집중해요. 이번엔 전공 강의도 하나 더 있잖아. 김 교수가 흔들리면 학생들은 누굴 믿겠어. 안 그래?"
"…알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봐요. 학기 진행에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하시고."
"네. 좋은 주말 되세요."

나는 힘없이 인사를 드리고 학장실을 나섰다. 대충 예상한 결말이지만 역시 맥이 빠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껏 제주도라는 새로운 단서를 얻었는데, 그걸 좇는 것은 나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었다. 학장실 문 앞을 몇 걸음이나 서성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면서, 나는 그제야 내게 주어진 지금의 역할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교수 태를 갓 벗어가는 서른 아홉, 원하는 대로 모험을 떠나기에 나는 내 생각보다 너무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여정이라면 더더욱.

우석관 2층 한구석에 있는 내 교수연구실은 아침에 박차고 나온 그 모습 그대로 어질러져 있었다. 이 방을 처음 배정받고 감동에 벅차올랐던 과거의 나는 이제 내 안에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알 수 없는 권태감이 그 감정을 지워내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제주도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그 자리를 대신해가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은 내 마음의 화학 반응을 거꾸로 돌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온갖 문헌 자료와 서적, 연구 공책들로 가득한 책상에 손을 뻗었다.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도 추슬러지게 마련 아니던가. 나는 위태롭게 기운 채 쌓여있는 구전신화 해설서와 취재 자료 파일들을 차례로 집어 책장에 꽂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천지왕본풀이 주해, 다음엔 참고용 중국 신화 자료, 그리고 미륵 신앙 분석 논문. 한 권 한 권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작년의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윤곽이 그려졌다. 한국 신화의 핵심 줄기를 되살리겠다고 머리를 쥐어싸매던 나날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마고 할미."

내 손엔 설만희 선생의 대표 저작인 『마고 설화 복원 도상의 부도지 비판』이 쥐여 있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이 소논문은 여전히 내 책상 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놓아왔던 것이고, 오늘 아침에도 이 글을 읽다가 방을 뛰쳐나가 그대로 학장실로 들이닥쳤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 책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돌려두었다.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처럼.

난 그대로 회전의자에 털썩 몸을 날렸다. 어깨에서부터 힘이 쭉 빠지며 무너져내리는 몸뚱이가 녹듯이 의자와 하나가 되는 걸 느꼈다.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이 날 등 뒤에서 끌어안는 것 같았다.

"안 돼—. 세경아, 이 타이밍에 낮잠은 곤란하다… 끙."

멋대로 닥쳐오는 졸음, 아니 무력감을 기지개로 밀어내며 나는 자세를 곧추세웠다. 창문을 여는 것은 도움이 안 될 성 싶었다. 오늘도 예외없이 창 밖 풍경을 메운 박무는 도리어 없던 졸음병까지 붙여줄 게 뻔했다. 우선 손에 소일거리를 쥐여주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의자를 책상 옆으로 당기고 손에 닿는 서랍을 아무거나 하나 골라 열었다. 그러자 대충 주워섬겨둔 뜯지도 않은 우편물들이 잔뜩 튀어나왔다. 겨우내 우편함에 쌓인 걸 아침에 꺼내서 서랍에 처박아 뒀던 것이다.

막 정리해서 비워둔 책상 위에, 확인한 우편물이 하나씩 쌓여갔다. 세금이나 월세 고지서, 학회 초청장 따위를 빠르게 넘기며 책상에 던지던 내 손길이 녹색 촛농으로 봉해져 있는 멋들어진 봉투에서 멈췄다.

"발신, 제주특별자치도 서천 컨트리 클럽 설 만 희. …설만희?!"

튀어오르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는 내 주변으로 편지 봉투들이 우수수 흩날렸다. 하지만 내 눈에 나머지 편지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채로 봉투를 치켜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석구석의 글자 하나하나까지 살펴보았다. 돌하르방 캐릭터가 그려진 귀여운 우표에는 서귀포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고, 반송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부실한 발신자 주소도 들은 대로였다. 묘한 상호명이 추가로 적혀 있었지만 그걸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수신인 기입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봤지만, 역시 내 연구실 우편 주소와 내 이름 석 자가 떡하니 쓰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사무용 커터칼을 찾아서 봉투 끝을 찢었다. 손가락을 집어넣자 단정하게 접힌 편지지와 빳빳한 색지가 한 장씩 들어 있었다. 종이들을 꺼내들어 펼치는 내 손에는 땀이 절로 맺히고 있었다. 나는 편지 쪽을 먼저 펼쳐 보았다.

친애하는 김세경 교수님께.


갑작스럽게 보내는 서신이 모쪼록 교수님을 놀라게 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수님과 같은 분야에서 조촐하게 배움을 찾고 있는 설만희라고 합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저술은 항상 빼놓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 새롭고 파격적이면서도 개연성과 타당성을 견지하는 교수님의 학설을 접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예전부터 김세경 교수님을 꼭 한 번 만나뵙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일터를 비울 수 없어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아쉬움만 달래왔습니다. 그러던 끝에 더이상 미루다보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아 이렇게 용기를 내서 초대장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 쪽에서 찾아뵈어야 할 일인데, 이렇게 결례를 범하는 것을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다가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서천에도 곧 봄 꽃이 만개하겠지요. 동백꽃이 물러나는 자리를 진달래 분홍빛이 물들일 무렵에 교수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바쁘실 줄 알지만 부디 한 번 방문해주시길 이렇게 청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서천에서 존경을 담아, 설 만 희 


붙임. 오시는 길은 동봉한 초대장에 적어두었습니다. 상세한 주소를 적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약간의 수수께끼를 곁들여 보았습니다. 무례인 줄은 알지만, 한편으론 저희 방식이 교수님 마음에 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느긋하게라도 좋으니 꼭 방문해주시실 부탁드립니다.




편지를 다 읽을 때 쯤 나는 겨우 진정시켰던 두 손이 환희와 흥분으로 다시 달아올라서 요동치는 것을 두 팔과 두 눈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맙소사, 설만희 선생이 나를 초대하시다니! 그것도 내 연구를 눈여겨보고 계셨다니! 나는 너무 신나서 거의 천장에 닿을 기세로 펄쩍펄쩍 뛰면서 쾌재를 불렀다. 나는 그대로 기세 좋게 봉투에 들어 있던 두 번째 종이를 꺼내 펼쳐들었고, 곧이어 내 흥분어린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게… 이게 대체 뭐야?"

녹색 종이에 연둣빛 도화지를 덧붙이고 테두리를 장식한 고급스러운 초대장에는 주소나 약도 따윈 손톱만큼도 담겨있지 않았다. 거기엔 세 행짜리 연이 셋 있고 민속학적 은유로 가득한 시 한 편만이 덜렁 쓰여있었다. 나는 십분인가, 그 이상인가, 멍하니 서서 그 시를 읽고 있었다.

이건 나를 놀리려는 걸까? 신종 사기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설 선생 이외의 사람이 보냈다기엔 발신자 주소의 특징이 너무 명확했다. 이건 시험이자 도전이다. 편지에서 수수께끼라고 한 만큼 풀 수 있는 비밀들이 이 시구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설 선생이라면 분명 내가 이 관문을 깔끔하게 해결해내서 자신을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나는 책상 한 구석의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뽑아들고 내용을 휘갈겨 쓴 뒤, 그대로 학장실까지 직행했다.

"아니, 연차 안 받아줄 거라고 했잖나?"
"연차 아닙니다. 휴직계입니다."

그렇게 내 일생일대의 미친 짓이 시작됐다.


2.

다시 시점을 돌려와서 2월 27일, 나는 제주공항을 벗어나 서귀포 교외에 잡아둔 숙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넓디넓은 제주도를 본격적으로 뒤지고 다니기 위해 렌트해둔 경차가 포로롱 소리를 내며 516 도로를 달렸다. 목적지는 우체국 소인만 믿고 일단 서귀포 방향으로 잡아놨지만, 어느 하나 확신할 만한 것은 없었다.

제주도 내 사업자 등록정보를 조회해서 '서천 컨트리 클럽'이란 사업체는 찾아냈지만, 주소지는 엉뚱한 오피스텔에 차려둔 텅 빈 사무실로 되어 있었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짜고짜 떠나온 것까진 좋았어도 이제 갈 곳이 막막했다. 비성수기 제주의 간선도로는 뻥뻥 뚫리다 못해 휑하니 비어 있었다.

몇 시간 후 나는 캡슐호텔의 작은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시즌이 시즌이다보니 어느 숙소를 잡아도 부담은 없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수수께끼 풀이가 진척되는 걸 따라 옮겨다니기 좋은 임시 근거지였으므로 일부러 이런 곳으로 고른 것이었다. 하지만 단서라도 좀 있어야 쫓아서 움직이든 말든 할 텐데 지금 내가 가진 거라곤 아직도 초대장 한 장 뿐이었다. 나는 그대로 뻗은 채로 품에서 색지를 꺼내 다시 읽었다.


서천에서 보내는 초대장


면류관과 왕홀을 잠시 내려두고
편안한 휴식과 만남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그대를 초대합니다.

세 할망의 오름 한가운데에 서면
흰 산 꼭대기 고개 내미는 석제의 따스한 눈길이
그대 등 뒤에서 옛 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아우 왕과 형님 왕의 두 세상 사이에 화폭을 펼친
극락의 꽃밭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 연은 별 의미없는 미사여구로 보였다. 동서양에서 각각 제위와 왕권, 그 권력과 책임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나열한 건 직업인의 부담을 가리키는 것일테니, 예비 고객에게 휴가를 권하는 컨트리 클럽의 홍보 문구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소를 가리키는 단서는 아니다. 패스.

세 번째 연은 분명히 서천꽃밭을 의미하는 은유가 확실했다. 소별왕의 이승, 대별왕의 저승. 서천서역국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전승마다 서천꽃밭의 구체적인 묘사나 역할은 조금씩 다른데, 단순히 이채로운 저세상 꽃들을 키우는 정원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승을 떠난 영혼이 정화되어 저승으로 떠나는 관문으로 묘사하는 설화도 많다. 그러나 이 역시 상호에서 따온 시구일 뿐, 제주도 상의 어느 위치를 나타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패스.

"결국 '오시는 길'은 둘째 연에 있다는 얘기인데."

나는 눈을 부릅뜨고 세 행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이 종이 위에 단 둘 밖에 없는 지리적 표현 중 '흰 산'은 한라산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제주도에서 산이라 하면 한라산 뿐이고, 그 밖의 봉우리들은 전부 오름이라고 부르니 말이다. 굳이 눈 덮인 한라산으로 묘사한 건 설마 겨울에만 입장이 가능하단 걸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컨트리 클럽은 웬만해선 사계절 내내 영업하고 대목을 꼽자면 오히려 봄여름이 보통이다. 그냥 어감이 좋은 시어를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한라산에 아직 눈이 덮여있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석제는 아우왕, 형님왕보다도 직접적인 언급이다. 한국 신화는 문헌화되지 못하고 민간에서 구전되는 동안 불교 등의 외래 종교와 상당히 결합했고, 적지 않은 설화가 이들의 신격들을 끌어들여 고유의 신격을 대체한 채로 살아남은데다, 그나마도 독립된 신격체가 훼손되고 뭉뚱그려진 개념으로 변천한 경우가 많다. 그런 연유로 제석천, 옥황상제, 환인, 천지왕 등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된 이 신은, 한국 신화의 문명신 중 최고위 신격이자 한민족의 천신이다. 하늘님의 따스한 눈길이라고 하면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양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천문요소, 태양 뿐이다.

즉, 내가 찾고 있는 목적지는 세 할망의 오름 한가운데에 섰을 때 한라산 위에 뜬 태양과 내 위치를 잇는 직선상에서 그림자 방향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문제는 '세 할망의 오름'이 대체 뭔지 감이 하나도 안 잡힌다는 것이다. 출발하기 전 거의 한 달 내내 제주도 오름마다 얽혀있는 설화, 인물, 역사적 사건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늙은 여성 세 명이 연관된 오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니, 제주도에 널린 게 오름이고 할머님들인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채로 무작정 여기까지 온 것도 자료 조사만으론 도저히 이 문제를 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트렁크를 열었다. 제주도 368개 오름에 대한 조사 자료 수천 장이 뭉텅이로 쏟아졌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서류 뭉치마다 색인을 달아놓았고, 그중에서도 그나마 유력한 후보군을 추려둔 묶음에는 붉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삼형제오름, 산방산, 성산일출봉… 까짓거 368개가 대수냐. 민속학은 원래 두 발로 하는 학문이다. 나는 첫 번째 서류철을 집어들어 침대에 펼쳐두고 답사 일정을 가다듬었다.

그 이후로 몇 주 동안은 강행군이었다. 오름들을 직접 방문하고, 오름 곳곳을 뒤지고, 인근의 인문지리 정보를 수집하고, 주민들을 취재하고, 심지어는 근처의 야생 동물 서식지 분포까지 파악해가며 서류 뭉치를 두배 세배로 늘려갔다. 거문오름, 물찻오름, 민오름… 리스트의 맨 마지막에 올려뒀던 바굼지오름의 자료 문서마저도 열 장 넘게 축적해갈 무렵에는 내가 민속학자인지 오름학자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갔다.

송당리 당오름을 두 번째로 오르던 날이었다. 초목과 바람에서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백주또, 백주할망 등으로 불리는 향토신의 본풀이가 남아있는 곳으로, 세 명은 안 되지만 늙은 여성 인물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