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단편

1.
- 헤어질까 싶다.

- 헤어져라.

- …

- 진짜?

- 응.

- 왜.

권과 주명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붙는다. 권이 먼저 시선을 내린다. 주명이 해치운 백반 식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주명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독촉하는 듯한 주명의 시선이 꽂히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권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은 오후 12시 30분에서 오후 2시까지. 둘은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왔다. 이곳으로 오자는 아이디어는 권에게서, 백반을 먹자는 아이디어는 주명에게서 나왔다.

권은 헤어질까,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 좀 갖기로 했어, 라고 말하려고 했을 뿐이다. 권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당혹감이 섞인 책임감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구내식당을 둘러본다. 점심 시간, 말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찬 식당은 어딘지 모르게 권이 느끼고 있는 기분과 화음을 내고 있다. 축축한 기분과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서로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격언이 여기서도 들어맞는군, 하고 그는 어느 정도 적당히 비참한 기분을 느낀다. 결국, 나른함과 우울이 서로 얼마나 친하든, 구내식당이 얼마나 활기에 찌들어 있든, 그의 기분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을 뿐이다.

- 대답 좀 해봐. 거 사람 피말리게.

권은 다시 커피를 들이킨다. 커피는 시럽을 넣지 않아 썼다. 그는 쓴 커피보다는 단 커피를 좋아했다. 쓴 맛은 이미 인생에서 많이 봐 왔고 앞으로도 맛 볼 것이란 것이 권의 지론이었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쓴 맛을 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의 쓴 맛 — 지금 그가 마시고 있는 커피보다도 수백 배는 더 쓴 맛이라고, 권은 생각한다.

- 야, 좀 대답하지? 이놈이 갑자기 귀가 안 좋아졌나… 아니면 충격을 너무 받았나… 권성욱, 너 김형이랑 사이 좋지 않았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김형, 에서 권은 얼굴을 찌푸린다. 그는 커피에 집중하기를 그만두고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주명을 쳐다본다. 권은 이제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 눈썹을 추켜올린 그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래봤자 상황이 뭐가 나아지겠느냔 생각이 어느샌가 앞선다. 결국은 그에게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지독한 놈.

- 아니, 또 왜.

- 배려란 걸 해주지 그래. 내 얼굴을 봐서라도.

- 네 얼굴이 좀 사회 복지를 받아야할 얼굴이긴 한데…

주명은 뒷말을 삼킨다. 권의 얼굴이 정말로 한 대 칠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분위기를 더 험악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으므로 그는 입을 다물기로 한다. 가뜩이나 권은 이미 험악해져 있었다.

- 그래… 어, 왜 그러는데?

권은 깊게 한숨을 내쉰다.

- 이건 너한테 처음 말했으니까… 조용히 좀 해. 그리고… 모르겠다, 나도.

주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 뭐여… 그러면은, 김형한테 정 떨어진 거야? 그렇게 잘 만나던 니들이? 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그는 텅 비어버린 제 식판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잇는다. 덕분에 권의 표정이 어떤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줄곧 압력을 받아 온 권이 점점 한계치에 치닫고 있는 것도.

- 아이고… 너 임마, 김형 좋다고 따라다닌게 누군데… 거.

한계치.

- 야 강주명, 이 개새끼야. 김형, 김형, 씨발 걔가 니 형이야? 그만 좀 그렇게 불러, 이 씨.

- 아니, 이 새낀 또 왜 욕질이여. 이 별명 창시자가 뉘신데.

주명은 태연한 표정이지만 누가 들었을까, 흘낏 주위를 살피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다들 제 식사에나 열중하고 있음을 안 뒤에야 그는 권에게 대답한다.

- 알겠다, 알았다고. 김형 말고 김지안 씨라고 제대로 부를게. 뭐 이리 열불이야…

권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 뭐. 너도 생각이 정리가 안된 모양이지만은, 좀 생각 해보고 행동을 해. 갑자기 헤어질까 싶다라는 말이 뭐야. 김지안 씨께서는 무슨 생각이신지… 여튼. 난 간다.

주명은 시계를 확인해보더니 식판을 들고 일어선다.

- 어디 가.

- 밥도 다 먹었고. 곧 회의고… 새로운 놈이 부산에서 잡혔다나 뭐라나. B계급 승진이 머지 않았다… 친구야.

- 부럽네.

무미건조한 권의 어투에 주명은 상처 입지 않는다. 오히려 주명은 그를 걱정해주는 투로 말을 꺼낸다.

- 그러게, 내가 사내연애 하지 말랬지…

권은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다.

2.
권은 숙소 침대에 몸을 던진다. 붉게 타들어가는 석양이 창가에 내리쬐는 꼴이 침대에서는 보인다. 그는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팔로 눈두덩이를 덮는다. 숙소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다. 갈아입고 싶은 마음조차 그에겐 없다. 가슴 한 구석이 파인 느낌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스푼으로 푸딩을 뜨는 환각이 인다. 갈색 표면에, 노란 몸통을 한 푸딩이 스푼으로 파인다. 권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혼날 때의 기억을 잠시 떠올린다. 어딘지 모를 불안함, 어딘지 모르게 많이 아팠던 기억. 가슴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인가에 의해, 어쩌면 고급진 스푼에 의해 투박하게 파인 것처럼 휑하니 아프다. 환각에서, 스푼을 잡고 있는 손이 보인다. 손은 파인 푸딩을 입으로 가져간다. 스푼을 들어 푸딩을 먹는 지안이 보인다. 반년 전인가에 갔던 카페의 윤곽이 떠오른다. 지안은 푸딩과 아메리카노, 권은 아포카토. 더 일찍 올 걸 그랬어, 하고 지안의 입술이 움직인다. 권은 그 입술을 보고 있다. 기억이 알알이 박혀서 더는 잊지 않게 하려는 듯이.

두서없는 기억의 출몰이 지겨워진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재빨리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권은 일어나 외출복을 벗는다. 시간은 점점 더 지나가, 어느새 빛이 방 안으로까지 들어온다. 권은 물끄러미 방의 어둠이 붉은 색의 침범에 일그러지는 꼴을 관찰한다. 까맣게 내려앉은 어둠이 서 있는 방바닥은 갈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노을은 하늘에만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꽤 적극적인 꼴로 권의 침실을 헤집는다. 언젠가 느꼈던 아픔이 뇌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것을, 권은 잘 알았다. 어쩌면 줄곧 느끼고 있었는데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끝날 줄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걸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거지. 권은 웃옷을 방 저편에 있는 옷걸이에 걸고,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확인한다. 오후 여섯시 반. 문자는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