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행진, 출발
평가: 0+x

13___death.jpg

어릴 때 유랑 서커스단은 일종의 커다란 축제였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하는 행진은 그중 가장 큰 행사였고, 서커스 공연보다 행진을 보러온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나와 내 아버지도 그랬다.

행진에는 여러 기인들이 걸어갔다. 곱사등이는 기본이었고, 난쟁이와 거인, 팔이 세 개 달린 사람이 다리가 없는 사람을 들고 가는 것도 보였다.
앞으로 지나가는 행렬들을 보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들, 나중에 크면 저런 뒤틀린 사람들도 품을 줄 아는 어른이 되어라.”

아직은 모를 나이였지만, 어느 때보다 무거웠던 아버지의 말에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 청년이 되었고, 어쩌다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마녀라는 여자가 불타 죽어가고 있다.


장적더미 위로 한 여자가 기둥에 묶여있다.

많이 봤던 여자다. 산에서 홀로 살아가던 은둔자 여인. 아버지와 사냥을 하면서 자주 봤던 여자였다. 여자의 주위로는 횃불들이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녀사냥의 철이었다.

마녀라 불린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어제 친구의 엄마가 풀려났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렇게라도 피해가야 했던 심판이었다. 그들을 원망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게 보고 싶지도 않았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아버지를 죽인 마녀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멧돼지에 받혀 절벽에 떨어진 걸 지켜봤다. 얼떨결에 따라 나온 광장엔 그 여자가 묶여있었다. 그 여자가 멧돼지와 나 사이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아버지처럼 될 뻔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의 뒤뜰에서 아버지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한다. 내가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못 내고 절벽 위에서 울부짖을 때, 그녀는 시신은 자신이 수습해 놓겠다고 말했다.

그게 1년 전이었다.


불길이 높게 치솟는다. 마녀의 비명소리도 높아졌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돌을 던졌다. 돌이 불 안으로 사라질 때마다 비명소리가 끊겼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과 소리들이 멀게만 느껴졌다.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그 순간은 조용한 처형식이었다.

불길이 사그라들자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주춤거리며 돌아갔다. 여자의 시체는 본보기로 일주일간 방치한다고 했다. 나는 처형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서있기만 했다.

“세상엔 악마들이 많나요?” 어린 내가 물었다.

“그럼. 그들은 행동할 때 못하게 하고, 행동하지 않을 땐 하게 한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다시 그녀를 찾았다. 밧줄이 타버렸을 테지만 그녀의 몸은 묶였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검었다. 아니, 그녀를 포함한 모든 게 검었다.

나는 그녀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시체가 유난히 크게 나타나 나를 지그시 눌렀다. 나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두 팔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주 조용한 바람소리가 내 귀를 흔들어놓고 지나갔다.

하지만 정작 나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없었다. 그때 그녀의 가슴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였다.

생각할 틈도 없이 장작을 밟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맙소사, 살아있어.

이미 타버린 밧줄을 잘라내고 그녀를 등에 업었다. 놀랍도록 가벼운 그녀의 몸에 어떠한 온기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귓가에 들어왔다. 그녀의 스러져가는 목소리가 그 위에 얺혀서 들어왔다.

“내 집으로….. 내 집으로…..”

나는 그녀를 업고 산을 올라갔다.


10분 만에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평소엔 15분도 걸리는 길이었다. 침대에 조심스레 그녀를 누였다. 여전히 검은색이긴 했지만 아까보단 살이 좀 붙은 것 같았다.

“고마워요. 다시 와 줘서.”

목소리도 아까보다 또렷해졌다. 숨소리도 더욱 안정적이었다.

“당신이 절 구해줬잖아요. 아버지도 이렇게 하라 했을 거에요.”

“실망시켜드려서 어쩌죠? 전 진짜 마녀에요.”

“그래서 더욱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얼굴에서 검은색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볼 위로 살이 자라는 게 보였다.

“재밌네요. 어째서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이 세계의 어떤 뒤틀린 사람들을 품어주는 어른이 되라고.”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몸통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느새 옷도 돌아와 있었다.

“좋은 아버지를 두셨네요. 덕분에 당신은 목숨을 건졌어요.”

“네? 그게 무슨…….”

“마을 사람들은 오늘 밤 다 죽을 거에요. 당신 빼고. 아, 오해는 마세요. 제가 죽이는 건 아니니까요.”

“……”

“전쟁이 있을 거에요. 여긴 이 전쟁에 첫 번째 전투이자 첫 번째 학살이 될 거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가서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어디 가세요?”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죠. 이대로 이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어요.”

“그게 그 사람들 운명이에요. 그냥 두시죠.”

“전 거기서 벗어났잖아요. 다른 사람도 벗어나지 못할 이유가 없죠.”

"그래서 더 안 되요."

마녀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가면 당신만 죽을 운명이에요. 마녀의 말을 들은 당신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잠깐 마녀를 쳐다봤다.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뒤틀린 사람들을 품어주는 어른이 되렴.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렸고. “미안해요.”

“이게 뭔…….”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시선이 산만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마을이 그녀처럼 불탔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처럼 검어졌다. 하지만 난 살아남았다.

다시 거대한 죄책감이 나를 지그시 눌렀고, 그녀는 그런 나를 지그시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당신이 원한 건가요? 자신을 죽인 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 여기는 제 전부였어요! 내 가족, 친구, 이웃! 이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 하진 않겠죠! 당신은 복수를 해서 즐겁겠지만 전 이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고요! 마녀들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나보죠? 당신은 날 죽게 내버려 뒀어야 했어!”

마녀는 슬픈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폐허와 재, 시체와 침묵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냥 서있었다. 마녀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이미 죽음의 운명을 벗어난 당신은 그 순간부터 편히 죽지 못할 운명이었어요. 이게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운명이었어요.”

마녀는 소매 속에서 양치기 지팡이를 꺼냈다. 소매에 꺼내기에는 너무 큰 지팡이였지만,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저와 함께 죽은 자를 인도하는 거에요. 여기에 죽은 사람들은 당신을 돕는 조력자 내지는 조수가 되어줄 거에요.”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시체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녀 뒤에는 이미 여러명의 검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검은색 마을 사람들이 비척거리며 마녀 뒤에 서있는 검은 대열에 합류했다. 마치 행진하려는 것마냥.

마녀는 다른 소매에서도 양치기 지팡이를 꺼내 건넸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그겻을 집어 들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손에서 빼려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당신의 운명은 이제 그거 하나뿐이니까요.”

“당신을 그냥 화형대에서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다른 미래를 봤으면 오히려 고맙다고 할걸요?”

검은 인간의 절반이 내 뒤로 모였다.

“저희는 이제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보이지 않을 거에요. 대신 사람이 많이 죽었을 땐 부득이하게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도 있을테니깐, 그땐 사람들에게 안 걸리게 조심하시고요.”

그녀의 일방적인 훈수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나를 보며 웃었다. 보기가 싫어져 뒤로 돌아 걸어갔다. 언젠가는 빠져나가고야 말것이다. 언젠가는.

“아, 설마 벗어나려는 생각은 하지 마요! 저희는 나아가야만 해요!”

마녀가 소리쳤다.

“알겠죠! 저흰 나아가야만 해요!”

언젠가는.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