쬐깐한 설정들

날개교(捺開敎)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무진시에 그 거점을 두고 있는 사르킥 분파이다. 날개교가 대한민국에 전래된 그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나 현 학계에서 인정하는 바는 아관 파천(1896) 이후다. 날개교의 행적이 불분명한 것은 당시 급박했던 정세에 세력을 펼치기 어려웠던 탓으로 보인다. 한때 학계에서는 당시 날개교의 이름이 백백교였고, 이들이 바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어 현재까지도 그 증거를 수집 중이다.

날개교는 한국 전쟁이 정전된 이후부터 세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날개교의 목사를 자칭하던 백영후(白永朽)(카르시스트 말랍Malab)의 지도 하에 날개교 교파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워진 사회를 이용하여 대한민국 곳곳의 음지에 스며들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무진이었다. 1964년부터 이곳에서 각종 선교 작업을 벌이던 이들은 1970년 “무진평화날개동산”를 세우며 무진에의 정착을 선언한다.

재단은 1982년까지 이들을 불교 계열의 단순한 사이비 종교라고 생각했으나, 1987년 불거진 해당 종교 단체 상속 비리 건으로 이들이 사르킥교의 한 분파임을 확정 짓게 되었다. 당시 법정에서 사망한 이는 모두 31명으로, 이 중에는 담당 판사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기동특무부대에 의해 생존자들에게 기억소거제가 투여되었고, 사르킥교도 10명이 체포되었다.

사건 이후 무진평화날개동산은 “무진제일날개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출범하게 되었다.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날개교를 이끄는 정나독(丁癩毒)이란 인물은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백영후와 동일인이라고 추정된다.

이들의 교리는 원사르킥과 신사르킥을 융합한 모습으로, 활동 양상은 신사르킥과 유사하나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원사르킥과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타 종교의 규범이나 사상을 담습하는 등,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이들의 확고한 특성은 바로 '기복 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종파들이 공통적으로 신격화와 의지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날개교는 교리 내에서 이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이온과 얄다바오트1에게 단순히 현세의 영광만을 비는 모습이 다수 목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