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개전)이었던 것

제64K기지 전방 10km 해안

검은 하늘, 그에 비친 어두운 바닷물은 잔잔했다. 별빛이 내리쬐는 이 해안엔 엷은 안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희뭇한 안개와 바닷물을 가르며 들어오가는건 재단의 위장 선박이었다.

"KRJSMU, KRJSMU 등장하라. 본측 F-100057."

"행정관 박희중 등장. 승인 코드는?"

"3-T-0-S, S-T-3-8. 입항 승인권자는 기지 이사관 선우 아난. 부두 개방 바란다."

"수신 양호."

박희중 행정관이 코드를 입력하자 부두의 7번 단말은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개방되었다.


기지 앞뜰

희중은 야간 근무의 피로를 풀 겸 기지 밖으로 나와 잠깐 바람을 쐬었다. 그는 거센 하품과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뜰 쪽에서 서성였다. 그러다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시선을 두고는 어딘가에 반짝일 선박을 찾으려 애썼다.

안개가 오른 탓일까, 눈이 침침해진 탓일까,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희중은 주머니에서 안경을 찾으려 뒤적이다 손에 집힌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한 개비를 물어 뒤를 돌자 막 기지 입구에서 나온 유리 요원이 보였다.

"아, 유리. 잠도 없이 이 시간엔 왠일인가?" 희중은 반갑게 맞이하며 한 모금 깊이 빨았다.

"헹, 금연하셨다고 들었었는데요."

"으하! 핫하하··· 그래, 이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더군." 놀란 희중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의 들썩거림과 함께 새나오는 연기가 유리에겐 신기하게 보였다.

"요새 잠이 잘 안 와서 말이에요." 유리가 말했다. "종종, 그럴 때면 나와서 여기 한 바퀴를 빙 돌아요. 쌀쌀한 바람을 쐬다보면 먹먹한게 조금은 풀리거든요."

"음." 희중은 격려나 조언이 될 만한 말을 찾다가 그냥 관두었다. 가끔은 그편이 더 도움이 되곤 하니까.

"행정관님, 저기 좀 봐요. 까치에요." 유리가 분위기를 환기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정말로 돌담 뒤 편에서 까치 세마리가 총총대고 있었다. "저런건 참 처음 보네요."

그제서야 안경을 찾아 쓴 희중도 동의했다. "그래, 그러게나 말이야. 참, 유리. 한국엔 까치를 보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다는 거 알아?"

"그럼요. 그러면, 이번엔 세 명씩이나 온다는 건가?"

"나야 모르지." 희중은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 작전실로부터 온 전화일 것이다. 까치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달아나 없었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볼게요. 행정관님 덕에 잠이 솔솔 와서 말이에요." 유리가 짖궂게 농담했다.

"크하! 어서 들어가보게. 우리야말로 자네들 덕에 발 뻗고 자는게 아니겠나." 희중은 호탕하게 웃으며 유리를 들여보냈다. 그리곤 휴대 전화를 꺼내들어 보았다. 새빨간 화면. 전화는 아니었다.

실상황. 전시 상황이 임박했음을 의미한 알림이다.

"경계 태세 격상?" 희중은 그제서야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매섭게 물을 가르며 다가오는 선박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눈이 문제가 아니었다. 선박 하나가 모든 불을 끄고 돌진하고 있었다.

깨닫기가 무섭게 기지 문을 박차고 뛰쳐 나오는 대응반을 볼 수 있었다. 대응반은 일사불란하게 지정된 진지에 투입했다.

"선생님!" 희중은 깜짝 놀라 옆의 상대를 돌아보았다. 경비대원 중 하나였다. "여기 있으면 위험합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대는 어디론가 뛰어갔으나, 희중은. 자신이 곧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항구를 폐쇄해야 해'


기동특무부대 알파-88 ("최전선") 수송 헬리콥터

"예, 알파-88 기무대장 홍진혁입니다. 상황 진정시키고 병력 이동 중입니다. 뭐, 얼마 안걸립니다. 그렇지 파일럿?" 진혁은 사령부와 교신하다 말고 조종사에게 물었다. 조종사는 별 말 없이 엄지 하나를 들어보일 뿐이다.

"새끼.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간단히 보고한 진혁은 한숨을 쉬던 통신병 하나를 나무랬다.

"인마 너, 체력 많이 죽었다?"

"에고, 그 거리를 뛰고 땀 한 방울 없는 부대장님이 이상한겁니다." 정신줄 못잡는 통신병이 불평했다. "아주 기만자셔, 기만자."

"기만은 무슨? 요기 땀 있잖냐. 요, 봐라."

통신병이 찡그리며 웃자 다른 대원 하나가 물었다. "부대장님, 밤새 미친 시위대 진압에, 또 무슨 작전입니까?"

"연합으로부터 연락이 왔어." 진혁이 창가에 기대며 말했다.

"연합이요? 그 쥐—오—씨발 것들이 왜요?"

"지금 제64K기지 하나로 가는 선박 하나가 우리 것이 아니랜다. B.E. 녀석들이 탈취했다고 말야. 그건 우리쪽 직원은 전혀 몰랐던거야."

"미친것들. 또 엔트로피 입니까? 정말 씨를 말려버려야 할 텐데." 잠자코 듣고 있던 대원 하나도 거들었다.

"부대장님, 새 메세지입니다. 엑? 잠시만 이거, GOC에서 보낸겁니다?" 통신병이 단말 화면을 보이며 말했다. "얘네는 어떻게 알고 정보를 주는걸까요?"

"왜 주는지도 의문이지. 한 번 보자." 진혁이 말했다.

수신: SCP 재단 감시사령부, 제64K기지, 알파-88, 뮤-39 등 7명

긴급 상황 전파 체계

  • 현 시각 부 무진시 율촌면에서 파괴되어 은폐된 GOC 정찰 차량 식별.
  • 사고는 수 시간은 족히 된 것으로 추정.
  • 정황 및 기타 증거에 의거, 세력 '엔트로피를 넘어서'의 행위임이 명백함.

: 선박만이 B.E.의 전력이 아닐 수 있음. 전력 외 잠입 세포에 유의할 것.

발신: 세계 오컬트 연합 정보국

제64K기지 작전실

"상황 전파 드립니다! 현재 추정되는 적의 수는…"

"선박은 재단 물자를 탈취한 것으로…"

"현 속력으론 기지까지 3분 정도…"

작전실은 순식간에 난리통이 되었다.

"전술 대응반은 진지 점령이 끝나는 대로 보고하라!" 아난이 지시했다. 기지 이사관 아난 박사조차 평정심을 바로 잡느라 진땀을 빼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잉-

아난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행정관?" 아난은 전화를 받곤 말했다. "행정관, 지금 기지인가?"

"아닙니다. 이사관님, 지금,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희중은 다급하지만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말하게."

"선박은 부두 단말로 오고 있습니다. 저게 정박하면 완전히 트로이 목마를 들이는 급일겁니다. 이사관님, 우리 항구는 바닥에서 솟는 쇠기둥 바리게이트로 개폐합니다. 그외에도 쇠기둥은 해안 중간 중간에 위치해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 현장 단말 조작기에서 설정을 조금 고쳐놓았습니다. 때만 맞으면 배는 다가오다가 제 속도에 반으로 찢어지고 말겁니다."

"자네 지금 총 한 자루 없이 전장에 있단 말인가? 맨몸으로?" 아난은 소리쳤다.

"이사관님, 이건 저만 조작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제가 신호하면 거기서 바리게이트를 올리십시오. 이제 곧입니다."

더 이상 아난도 그를 말릴 순 없었다. 그럴 수도, 그럴 시간조차도 없었다.

"믿겠네." 아난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이사관님. 이제 곧…" 희중은 장치를 조작하며 선박의 위치를 살폈다. 그러곤 침을 삼켰다. "셋… 둘…"

"하나, 지금입니다."

부우웅-

묵직한 울림이 부두까지 울리는 진동을 일으켰다. 수면이 떨린다. 타이밍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바다 깊은 곳, 기둥은 물 끓는 소리 따위를 내며 솟아올랐다. 지름 1미터 짜리 묵직한 기둥이 막 부딪히기 직전에 해수면에서 솟구쳤다. 곧 이어, 수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잠해질 틈도 없이, 금속이 찢어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하늘을 찢었다.

"이거 믿을 수 있는 거 맞나?" 아난이 비디오월을 보며 소리쳤다.

"상급기술부에서 자랑하던 겁니다. 말이 쇠기둥이지 이게 저희는 정체도 모를 금속이…" 희웅은 전화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다 귀를 막았다. 소음이 너무 커서 귀가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희웅은 얼굴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무엇지도 모르고 있었다. 희웅은 고통스러운 굉음에도 조작판엔 한 손을 뗄 수 없었다. 아난 역시도 노이즈 외엔 전화로부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작전실의 행정 직원들은 비디오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는 기도를 하는 이도 있었다. 모두가 긴장했다.

선박은 기둥에 절반쯤 갈려나가더니 완전히 멈추었다. 그 거대한 몸집에도 옆으로 엎어지지도 않은 채 기둥에 완전히 꿰뚫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둥은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이미 수 십 미터씩이나 뚫어버렸음에도 그랬다.

"끝이다." 아난이 입을 열었다.

"…하, 하하하하하-. 됐어. 됐다구" 희웅은 안도의 웃음을 터뜨리곤 긴장이 아주 풀려버렸다. 조작판에 손을 떼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버렸다. 이제 바다 한 가운데 묶이게 된 놈들을 소탕하는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환호하는 작전실의 분위기가 작살난 건 함선 뒤편에서 부양정이 튀어나온 것이 비디오월에 포착되었을 때부터였다. 부양정 두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속하자 그 속도는 말로 할 것도 없었다.

희중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번쩍이는 불빛 여러 개가 왱왱거리며 기지쪽으로 용진하고 있었다. 아주 넋이 나가버린 희중은 다리 하나 가누질 못했다. 그리고 그 때,

"행정관님!"

희중은 놀라 자신을 불렀던 방향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경비대원 하나가 달려왔다. 등대의 역광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이런 고맙네. 고마워." 희중이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겨우 걷게 되고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되자, 벌써 총소리가 하늘을 메웠다. 벌써 부양선이 상륙한 모양이었다.

"어서요, 이제 뜁시다!" 그는 거의 기지 앞까지 데려다주곤 수송 차량에 올라탔다. 차량엔 유리도 타 있었다.

"수고하십시오, 행정관님! 저흰 521-KO로 갑니다." 유리가 손을 흔들었다.

행정관은 무어라 무어라 소리치며 기지로 들어갔으나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SCP:

재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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