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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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끝났다.

“잠깐, 그건 조금 이상하잖아. 이 어떻게 끝날 수가 있어?”

젠장,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친담?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그 부분을 지우고, 뭔가 좋을 생각이 있을 때까지 팔짱이나 끼고 문자열 뒤에서 깜빡거리는 저 선이나-

“썅! 너 언제 들어왔어!”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늘 보는 능글맞은 얼굴이 보였다. 빌어처먹을.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야?”

녀석은 여전히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가 팔짱 끼고 막 고민하다가 첫 단어를 입력했을 때.” 처음부터라는 거잖아 이 쌍놈아.

당장 열려있던 워드 프로세서를 종료시키고, 컴퓨터의 전원을 끈 뒤,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 문밖으로 쫓아내고는 문을 걸어 잠갔다. 바깥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시하고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 - 야, 미나Min-ah! 문 좀 열어봐! - 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분명 - 미안하다니까! - 문을 잠갔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 예전에 만들었던 작품이 - 아 좀!

“아 거 진짜 시끄럽네! 좀 닥치고 있을 수는 없냐!”

“문 열어줘서 감사.”

“야 이 개새꺄!”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침대에서 튕기듯이 일어나 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틈으로 들어와 침대를 차지하고 앉았다. 진짜로 미칠 지경이다. 내가 어쩌다가 얘랑 동거하게 되었지? 가뜩이나 싼 방을, 동거하면 더 싸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인 이 녀석을 불렀다. 테레지 '잭팟' 오닐Teresy 'Jackpot' O'Neal.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자마자 만난 첫 친구이자, 이제 4년 지기 친구이다. 하도 내가 한국어로 욕을 해대서 이젠 한국어로 된 욕을 알아듣는 경지에 오른 친구이기도 하다. 썩을.

“근데 갑자기 글은 왜 쓴 거야? 이번에는 글 쪽으로 도전해보게?”

내 저거 물어볼 줄 알았지.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테레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항상 능글맞게 웃는 얼굴. 갈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하여간 눈은 되게 예뻐요.

“걍 취미야.”

“취미?”

“취미.”

“취미치고는 심각하게 고민하던데.”

“취미니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거지.”

“어라, 그런가?”

“것보다 아까 문 잠갔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내 말에 테레지는 '아, 그거?'라고 가볍게 말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좆같이도 예상이 맞았다. 열쇠였다.

“너 그거 작품전에 내지 않았었어?”

“원래 만능열쇠 같은 건 두 개씩 만들어놓고 그러는 거야.”

미치겠다. 이제 내 사생활은 쫑난거나 다름없다. 저 녀석이 만능열쇠를 만들어놓고는 '사생활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게 일 년 정도 되었는데, 그사이에 도대체 내 방에서 뭘 얼마나 봤을까. 아니, 그것보다 빈집털이 한 거 아냐?

“어떻게 내 아름다운 작품을 그런 범죄에 쓰겠어?”

“너 지난번에 만든 작품으로 사람 한 명 죽지 않았었냐?”

“그건 일종의 재해지. 멍청해서 생긴 재해. 조형물 이름부터가 '만지면 죽어요'인데 만진다면 그건 바보지.”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나 너 전시회 준비는 하고 있어?”

“당연하지.”

간만의 전시회다. 지난번의 전시회는 실수로 시간을 맞추지 못해 나는 나가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심혈를 기울여 작품을 만들었다. 정말로 간만에, 제시간에 맞추어 만든 역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열고, 안으로 몸을 기울여 벽에 기대어놓았던 그림을 조심스레 꺼내어 들었다. 자칫해서 떨어트려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끝장이다. 전시회가 사흘 뒤인데 지금 망가지면 시간에 또 못 맞춘다.

“이거야.”

자랑스레 내보인 그림을 테레지는 진지하게 살펴보았다. 푸른 바다에 흰 백사장. 아름다운 여름 백사장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었다. 테레지는 정말 진지하게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곧 얼굴이 그림에 닿을 것 같이 가까이 대고 보았다.

“야, 미나.”

“왜?”

“지금 이 그림에서 정말로 엄청난 게 보이는데 내 눈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아닐걸.”

“야, 너 미쳤냐?”

갑자기 테레지가 소리를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그림을 놓칠 뻔했다. 겨우 바닥에 떨어트리지 않고 그림을 잡았을 때, 나는 나대로 긴장하고 테레지는 테레지대로 긴장한 것이 보였다. 아니, 잠깐. 얘는 왜 긴장해?

“너는 왜 긴장하고 있어?”

“너 미쳤냐! 그거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당장 이 우주가 박살 날지도 모르잖아!”

“아닌데.”

이번에는 테레지가 당황할 차례였다. 아무래도 아직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 모습에 살짝 자부심이 들면서, 괜히 으쓱해졌다.

“이래 봬도,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이란 말이지.”

“너- 뭐? 아니, 왜?”

“왜라니?”

“그런 건 너무 지루하잖아.”

“그래도 겉보기에는 엄청나잖아.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감히 만질 엄두를 못 낼 거고, 진가를 못 알아보는 멍청이들은 그냥 만져댈지도 모르지. 그 아이러니가 얼마나 우스워.”

아, 상상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테레지의 벙찐 얼굴이 그에 한몫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웬 화가가 길거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작게 연 걸 봤거든. 보니까 그림이 막 움직이더라고. 근데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영상처럼 움직이기만 하는 거야. 그때 딱 감이 왔지. 아, 이런 거다. 그래서 바로 와서 만들기 시작했어. 다음에 또 보러 가서 감사 인사나 해야겠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던 테레지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엄청나네. 할 말을 잃었어.”

“칭찬 감사.”

다시 옷장을 열고 그림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자니, 테레지가 침대에 누운 채로 물었다.

“그래서, 그림 이름은 뭔데?”

뭐였더라. 잠시 잊고 있었던 이름을 기억 한 구석에서 건져낸 뒤, 입 밖으로 내었다.

“슈뢰딩거의 그림.”

그리고 두 번째 조각이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