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일상의 연애

"왜 이리 안 와…"

새벽은 어느새 도로변의 가로등에 눌러붙고 있다. 벌써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탁자는 제 빛을 잃고 나뒹굴듯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하준은 탁자 위에 내려놓은 팔을 무기력하게 내려다 보았다. 밤이 너무 늦었는데… 편의점 직원의 기운 없는 하품 소리를 들으면서 하준은 기어코 말라버린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버스는 오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안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지안을 태웠을, 평소 같으면 적어도 11시 반에는 오는 재단 셔틀 3호… 그 3호의 흰 범퍼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마침 일도 다 끝나는 토요일인데…

적어도 그의 일은 끝이 났다. 주중 내내 쉴 틈도 없이 예술가들 똥 치우랴 연합과 공적으로, 사적으로 만나서 한 딱가리 하느랴 정신이 없었다. 이제 드디어 좀 쉬나 했더만, 쉴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안 오고 있으니. 하준은 편의점 직원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이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하긴 지안은 하준 같은 요주의 단체 담당 부서같이 할 때 몰아치고 쉴 때는 평온한 일이 아니란 걸 그도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하준의 동기인 지안은 처음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와 같은 단체 담당 부서로 갈 것처럼 굴더니,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SCP 관리 부서 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런 부서로 갔으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닐 수 밖에. 저저번주에도 한창 곱창을 씹고 있을 때 그녀의 상사에게 전화가 와서 돌아간 일은 아직도 하준의 뇌리에 생생하다. 요새 맡은 게 좀 까다로운 거라고는 했지.

그래도 오늘은 그녀가 올 것이다. 하준은 아까 퇴근 전에 잠깐 지안이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야, 오늘은 대창 데워놔라. 금방 갈 거니까. 아오… 팀장 저거… 저 새끼 때문에 열불 나서 내가 좀 달려야겠어."

술안주 중 대창을 제일로 치는 지안임을 알기 때문에, 하준은 내심 확신이 있다. 지안은 올 것이다.

그는 매주 이 날마다 찾아오는 술 약속을 결코 빼먹지 않았다. 술 약속이라고 해봤자 맥주 한 캔과 매우 많은 양의 야식을 시켜먹는 것이라, 둘은 한주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자주 만났다. 그리고 자주 서로에게 계산을 미뤘다. 홀수 번째 주에는 그가, 짝수 번째 주에는 지안이 사는 걸로 마무리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치졸함이 있었던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치사함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것만큼 그에게 커다란 약점은 없었으니까. 한 순간의 실수로 다시는 못 보게 되는 일을, 그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많이 경고했다. 그와 지안의 관계는 돈독한 친구 사이였지만 실수로 살얼음판을 걷게 되는 일은 사양이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준은 스산해지는 날씨에 몸을 떨었다. 일부러 편의점 밖에서 먼저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있었건만 평소와 다르게 적은 수의 사람만이 나와 있어 괜한 일을 한 셈이 되었다. 더구나 시간이 가면서 그마저의 사람도 숙소로 들어간 상태다. 편의점 직원의 독촉 어린 눈초리에도 지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하준도 마침내 1시가 다 되어가자 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뭐 사시게요?"

가시 돋친 직원의 말을 무시한 채, 하준은 진열창으로 가서 물 한병을 집어들었다. 직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거나 사고 계속 저기 앉아있을 거냐는 표정이었다. 그럼 뭐 어쩌겠어, 하는 표정으로, 하준 역시 직원에게 얼굴을 찡그려 보았다.
직원은 다시 탁자에 앉아 농성 상태로 들어간 창 밖의 하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